다이소 이어 이마트·편의점 등 저가 제품 '속속'... 성분·후기 위주 소비 풍조도 한몫
국내 화장품 유통 시장에 아성다이소가 던진 '5천 원 이하 균일가' 전략이 유통가 전체로 빠르게 번지고 있다. 고물가 속에 저렴한 제품으로 먼저 부담 없이 효능을 시험해 보는 가성비 소비에 소비자들이 폭발적으로 반응하자, 다른 유통 기업들도 가성비 화장품을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대형마트와 온라인 플랫폼, 심지어 편의점까지 가성비 화장품 경쟁에 가세, 국내 뷰티 시장의 판도가 재편되고 있다.
이 '가성비 뷰티 대전'의 중심에는 소비자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오프라인과 모바일을 동시에 거머쥔 아성다이소가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다이소는 지난해 연 매출 4조 5363억 원을 달성하며 3년 새 매출 규모를 1.5조 원가량 끌어올리는 초고속 성장을 기록했다.
이러한 매출 급성장의 핵심 요인은 상품을 직매입해 박리다매하며 500원부터 최대 5천 원까지 균일가 정책을 펴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지난해 다이소의 뷰티 카테고리 매출은 전년 대비 약 70% 증가했다. 특히 10·20세대의 가성비 상품으로 인식되던 다이소 화장품은 최근 30·40세대가 대거 유입되며 소비층의 폭이 넓어졌다. 실제로 지난해 다이소 화장품 매출 비중은 40대(27%)와 30대(25%)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가성비 뷰티 전략이 화장품 주 고객층에 주효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런 초저가 화장품의 흥행은 제조 생태계의 변화와 진화한 소비자 행동이 맞물린 결과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제조 시설 없이 위탁생산이 가능한 화장품 책임판매업체는 최근 2만 7932개로 2015년 대비 335%가량 급증했다. 과거처럼 제조 공장이나 설비를 직접 구축하지 않고 화장품을 출시할 수 있게 되면서 중소 브랜드의 시장 진입 장벽이 낮아진 것이다. 대기업 브랜드가 아니더라도 제품의 설계부터 개발, 생산까지 전 과정을 도맡아 처리해 주는 전문 제조업체들이 활성화되면서, 유통사나 신생 기업도 고품질의 제품을 손쉽게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이에 따라 가성비 화장품의 품질이 전반적으로 상향 평준화됐으며 소비자들도 화장품 용기에 적힌 브랜드 로고보다 성분을 따져보고 구매하는 성향을 보인다.
이러한 현상의 배경에는 소비 흐름의 구조적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오픈서베이의 '5개년 K-뷰티 트렌드 리포트'에 따르면, 과거 소비자들이 화장품을 선택하는 핵심 기준이었던 '성분'은 이제 제품이 당연히 갖춰야 할 '기본 전제'로 지위가 바뀌었다. 이에 따라 오늘날의 가성비는 단순히 저렴한 제품만 찾는 것이 아니라 성분과 '후기로 검증된 효과'가 결합한 소비 형태로 진화했다.
최근 엑소좀, PDRN 등 고기능성 성분이 5천 원 미만 제품에도 탑재되면서, 비싼 브랜드 대신 성분이 흡사하고 후기가 검증된 초저가 대체품을 찾는 이른바 '듀프(Dupe) 소비'가 시장을 지배하게 된 배경이다. 복제품을 뜻하는 '듀플리케이션(Duplication)'에서 유래한 듀프는 명품의 디자인이나 성분을 카피한 저렴한 대체품을 의미한다. 고가 브랜드 제품과 기능은 비슷하면서도 가격은 훨씬 저렴한 대안을 소비하는 흐름이 유통가 전반에 자리 잡은 것이다.
평소 가성비 화장품을 즐겨 찾는 김아무개(21)씨는 "비싼 화장품은 큰맘 먹고 샀다가 피부에 안 맞거나 색상이 안 어울리면 돈을 버리게 되는데, 가성비 제품은 가격과 용량 모두 부담이 적어 실패해도 돈이 덜 아깝다"고 말했다. 지인의 추천을 통해 초저가 화장품에 입문했다는 신아무개(20)씨는 "아무래도 얼굴에 직접 바르는 제품이다 보니 처음에는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주변 친구들이 직접 써보고 추천하길래 다이소에서 수분 보충용 '히알루론 리퀴드 마스크'를 구매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기존에 쓰던 제품과 비교해 봐도 효능은 거의 비슷해 재구매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형마트 업계도 가성비 뷰티 라인업 강화에 나섰다. 이마트는 LG생활건강과 협업, 4950원 균일가 브랜드 '글로우:업 바이 비욘드'를 선보였다. 롯데마트 역시 7개 브랜드의 초저가 상품 28종을 모은 가성비 뷰티존을 도입하고 4950원 균일가 화장품 종류를 확대했다. 패키지를 간소화해 가격을 낮추고 유통사의 신뢰도를 무기로 실속형 고객을 공략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러한 가격 파괴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대형 온라인 플랫폼도 마찬가지다. 패션 플랫폼 무신사는 의류 소비자가 화장품까지 한 번에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연계 소비를 겨냥했다. 이에 따라 자체 브랜드인 무신사 스탠다드 뷰티를 선보이며 초저가 시장에 진입했다. 해당 라인업은 3900원부터 최대 5900원의 가격대로 구성됐다. 3900원짜리 세안제인 '퍼펙트 클리어 클렌징폼'을 비롯해, 피부 수분을 보충해 주는 '히알루론산 밸런싱 토너'(4900원), 피부 진정을 돕는 '트리플 시카 카밍 세럼'(5900원) 등 기초 제품을 전면에 내세워 스킨케어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이 흐름은 편의점 업계로도 이어졌다. 최근 화장품 매출이 지난해 대비 20.9% 성장한 CU는 1020 세대의 매출 비중이 70%에 달하자, 소용량·초저가 전략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에 따라 인디 브랜드 '에이오유(AOU)'와 협업, 입술에 생기와 보습을 주는 '글로이 틴트밤 미니'를 출시했다. 온라인 본품(1만 8500원) 대비 용량과 단가를 대폭 낮춘 8900원짜리 소용량 패키지를 구성해 주요 거점 점포에 배치한 것이다.
또, 메이크업 브랜드 '메리몽드'와 손잡고 눈매를 교정하는 색조 화장품인 '슈퍼트임 펜 아이라이너 미니사이즈'도 단독으로 선보였다. GS25 역시 색조 브랜드 '손앤박'과 협업, 12종의 색조 화장품을 3천 원 균일가로 단독 판매하고 있다. GS25에 따르면, 2025년 12월 기준 3천 원 균일가 뷰티 화장품 매출은 2024년 5월 출시 초기 대비 13배나 성장했다. 게다가, 전국 200여 개 뷰티 특화 매장의 가성비 뷰티 매출은 일반 점포 대비 22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과거 비상용 구매처에 머물렀던 편의점이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한 새로운 뷰티 플랫폼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불황기에 한 번 낮아진 소비자의 가격 기준은 경기가 회복된 뒤에도 쉽게 되돌아가지 않는다. 고물가 장기화 속에 합리적 소비가 정착된 만큼, 가격 장벽을 없앤 가성비 화장품은 반짝 유행을 넘어 뷰티 시장의 새로운 소비문화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덧붙이는 글 | 서희원 대학생기자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는 한림대학교 미디어스쿨 대학생기자가 취재한 것으로, 스쿨 뉴스플랫폼 한림미디어랩 The H에도 게재됩니다. (www.hallymmedialab.com)